예를 들어 월말에 카드 명세서를 보다가 OTT 두세 개, 음악 앱, 클라우드 저장 공간, 쇼핑 멤버십이 줄줄이 찍혀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씩 가입할 때는 모두 몇천 원에서 만 원대라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아 놓고 보니 무엇을 왜 구독했는지조차 헷갈립니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어느 앱에 있는지 찾다가 정작 볼 시간을 다 써 버리는 날도 있습니다.
이 피곤함을 연구자들은 구독 피로(subscription fatigue)라고 부릅니다. 이 글은 구독의 심리학 연재 1편입니다. 구독 피로가 정말 연구 대상이 되는 개념인지, 무엇이 피로를 키우는지, 그리고 그 피로가 해지 의도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국내 연구진의 논문 6편과 해외 논문 4편, 모두 10편으로 정리했습니다.
구독 피로는 기분 탓일까요, 연구되는 개념일까요?

논문 제목부터 이 질문을 던진 연구가 있습니다. Sarraf와 Kar(2026)는 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에 「구독 피로, 진짜일까?(Are you for real?)」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습니다. 이들은 구독 피로와 콘텐츠가 여러 플랫폼에 흩어지는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 OTT에 동시에 가입하는 멀티호밍을 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IMDb 이용자 리뷰 7,321건을 먼저 분석한 뒤, 인도와 호주 이용자 706명을 조사했습니다. 멀티호밍 의도를 높이는 소비 가치의 조합은 인도에서 8가지, 호주에서 4가지로 나타나 문화권마다 모습이 달랐습니다.
국내에서도 2024년 이후 구독 피로를 따로 측정한 연구가 여러 편 나왔습니다. 대부분 여러 OTT를 함께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고, 피로가 해지나 중단 의도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봅니다. 아래에서 소개할 연구들이 그렇습니다. 다만 이 연구들은 실제 해지 행동이 아니라 설문으로 잰 ‘의도’를 다룬다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할까요?

연세대 정동아·이상우(2024)는 『한국혁신학회지』에서 OTT 멀티호밍 이용자를 조사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인지 부하 이론을 틀로 삼았습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구독료 같은 경제적 비용, 그리고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볼 것을 찾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인 탐색 비용이 구독 피로의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쌓인 피로가 다시 구독 중단 의도를 높였습니다. 반대로 콘텐츠가 다양하고 큐레이션이 잘되어 있으면 중단 의도는 낮아졌습니다.
동국대 김민정·강재원(2025)은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에서 유료 OTT를 두 개 이상 구독해 본 성인을 조사했습니다. 구독 피로감과 가격 민감도 모두 해지 의도를 높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앱의 사용자 경험 가운데 ‘기능성’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피로감이 해지 의도로 이어지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쓰기 편한지, 재미있는지는 이런 차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또 가격에 민감한 사람이 피로를 거쳐 해지하게 된다는 간접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돈 문제와 피로 문제가 서로 다른 길로 해지에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고를 게 많으면 좋은 것 아닌가요?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고르기 힘들어지는 현상을 선택 과부하라고 합니다. 볼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OTT 화면은 이 현상이 일어나기 좋은 곳입니다. 한남대 김영진과 남서울대 추종호(2025)는 『Journal of Sport and Dance Science』에서 스포츠 OTT 이용자 373명을 조사했습니다. 콘텐츠 다양성, 개인화 추천, 다른 사람과의 공유 기능이 오히려 선택 과부하를 키웠습니다. 반대로 콘텐츠 정보를 충분히 주는 것은 과부하를 줄였습니다. 선택 과부하는 구독 피로를 높였고, 지속 사용 의도에는 직접 영향을 주지 않은 채 구독 피로를 거쳐서만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이 보여 주는 것이 곧 좋은 서비스는 아니라는 결과입니다.
몇천 원짜리 결제가 왜 한꺼번에 무겁게 느껴질까요?

행동경제학자 Thaler(1985)는 Marketing Science에 실은 고전 논문에서 사람들이 돈을 머릿속의 여러 계정에 나눠 담고 따로 계산한다는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 모형을 제시했습니다. 손실과 이익을 어떻게 묶어서 느끼는지, 거래 자체에서 얻는 만족(거래 효용), 그리고 가계 예산을 짜는 과정까지 하나의 틀로 설명했습니다.
정동아·이상우(2025)는 이 이론을 OTT 구독에 적용해 SAGE Open에 후속 연구를 실었습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커플링(coupling)입니다. 여러 구독의 비용과 혜택을 마음속에서 하나로 엮어 따져 보는 경향을 말합니다. 구독 피로와 함께 이 커플링이 구독 중단을 부추겼고, 사람들이 따지는 비용과 혜택의 범위가 넓을수록 그 효과가 컸습니다. 연령에 따라서도 달랐는데, 젊은 이용자는 효율적으로 찾는 기능을, 나이가 많은 이용자는 골라 주는 콘텐츠를 더 중시했습니다. 하나씩 볼 때는 가볍던 결제도 한데 모아 보는 순간 ‘이게 다 얼마지?’라는 계산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구독은 어떤 사람에게서 많이 쌓일까요? 서울과학기술대 임지안·성욱준(2024)은 『정보화정책』에서 2022년 한국미디어패널조사 자료로 사람들이 온라인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몇 개 쓰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을수록, 그리고 뉴스·잡지·전자책, 음악, 교육 영상을 온라인으로 써 본 경험이 있을수록 구독 개수가 많았습니다. 반면 온라인 게임 콘텐츠 경험은 반대 방향이었고, 과시적으로 물건을 사는 성향은 구독 개수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구독이 늘어나는 것은 과시나 충동보다 디지털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일에 가깝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하나는 이유가 있어서 가입했기 때문에, 전체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지치면 바로 해지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립한국교통대 이인구(2026)는 『경영컨설팅연구』에서 OTT 이용자를 조사해, 콘텐츠 품질이 지각된 가치를 높이고 그 가치가 구독 의사로 이어지는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구독 피로감이 높은 사람에게서는 가치가 구독 의사로 이어지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콘텐츠가 좋다는 걸 알아도, 지친 상태에서는 그 좋음이 ‘계속 낼 이유’로 잘 바뀌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피로는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족과 달리, 서비스 자체가 나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까다롭습니다.
가입하게 만드는 힘과 남아 있게 만드는 힘은 같을까요? 태국의 Pholkerd와 Nittayakamolphun(2026)은 Kasetsart Journal of Social Sciences에서 OTT 이용자 468명을 분석해 두 가지를 나눠 보았습니다. 재미와 콘텐츠 품질은 가입과 유지 모두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반면 개인 맞춤 기능은 가입에는 영향을 주었지만 유지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처음 끌어들이는 힘과 오래 붙잡는 힘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결과입니다.
기업 쪽에서 볼 수 있는 연구도 있습니다. Dinana와 El Kolaly(2026)는 EuroMed Journal of Business에서 세계 디지털 미디어 기업 28곳의 재무 자료와 12개 사례를 검토했습니다. 단순히 돈을 받고 콘텐츠를 주는 거래형 구독보다, 공동체 소속감이나 참여처럼 여러 겹의 가치를 주는 관계 중심 플랫폼에서 이용자 유지가 더 좋았고, 이런 가치를 느낄 때 구독 피로가 누그러졌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2차 자료와 사례에 기댄 탐색적 연구라 일반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오래 가는 구독은 결제 관계가 아니라 고객 관계에 가깝다는 제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구독 피로는 공식적인 심리 진단명인가요?
아닙니다. 소비자 연구에서 쓰는 개념이고, 여기 소개한 연구들은 대부분 설문 문항으로 피로감을 쟀습니다. 해지 역시 실제 행동이 아니라 해지하거나 중단하려는 ‘의도’를 잰 경우가 많습니다.
Q2. 구독 개수만 줄이면 피로가 사라지나요?
연구들은 개수보다 구독료 부담과 볼 것을 찾는 수고를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개수를 줄이면 두 가지가 함께 줄어드니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남긴 서비스에서도 찾는 수고가 크면 피로는 남을 수 있습니다.
Q3. 국내 연구는 주로 어떤 서비스를 다뤘나요?
이번에 본 국내 연구는 대부분 OTT, 특히 여러 OTT를 함께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쇼핑 멤버십이나 구독박스 같은 다른 구독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따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오늘 해 볼 수 있는 것
- 지금 내고 있는 구독을 모두 적고 한 달 합계를 내 봅니다. 하나씩 볼 때와 합쳐 볼 때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가 첫 번째 확인 거리입니다.
- 각 구독 옆에 마지막으로 쓴 날짜를 적어 둡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정보입니다.
- 새 구독을 추가하기 전에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존 구독이 있는지 먼저 살피고, 볼 것을 찾는 데 드는 시간도 비용으로 쳐 보십시오.
참고 문헌: 정동아, 이상우 (2024). OTT 멀티호밍 이용자의 구독 중단의도 연구: 구독피로감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혁신학회지』, 19(3), 217–239. / 김민정, 강재원 (2025). 구독 피로감과 가격 민감도가 OTT 서비스의 구독 해지 의도에 미치는 영향: 사용자 경험(UX)의 조절 효과를 중심으로.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42(4), 57–96. / 김영진, 추종호 (2025). 스포츠 OTT 콘텐츠의 과잉과 피로의 역설: 선택 과부하와 구독 피로가 지속사용 의도에 미치는 영향. 『Journal of Sport and Dance Science』, 5(3), 51–72. / 이인구 (2026). 구독경제에서 소비자의 구독의사에 미치는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구독피로감의 조절된 매개 모형. 『경영컨설팅연구』, 26(1), 101–111. / 임지안, 성욱준 (2024). 온라인 콘텐츠 구독 서비스 이용에 대한 연구: 디지털 리터러시, 제품 구매 성향, 성격 유형, 이용 경험을 중심으로. 『정보화정책』, 31(2), 105–132. / Jeong, D., & Lee, S. W. (2025). Unsubscribing from over-the-top: How subscription fatigue and mental coupling affect multi-homing users. SAGE Open, 15(4). / Sarraf, S., & Kar, A. K. (2026). Subscription fatigue – Are you for real? Studying cross-cultural factors for multihoming using consumption value theory. 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 89, 104623. / Dinana, H., & El Kolaly, H. (2026). Orchestrating customer value networks: Relationship-centered platforms as sustainable solutions to subscription fatigue. EuroMed Journal of Business. Advance online publication. / Pholkerd, P., & Nittayakamolphun, P. (2026). The reasons behind consumers’ over-the-top (OTT) online streaming subscription and retention in Thailand. Kasetsart Journal of Social Sciences, 47(1), 470117. / Thaler, R. (1985). Mental accounting and consumer choice. Marketing Science, 4(3), 199–214.
